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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우리는 통일일세대 수상작, 소설 부문 - 이지훈(중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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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화이음 댓글 0건 조회 72회 작성일 19-07-15 14:55

본문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진천규, 타커스 출판사) 와 삼지연 관현악단 서울 공연 영상을 본 후 감상을 담은 소설

 

 

맹인 조각상

 

본 작품은 이번 공모전에 제시된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분단을 소재로 하여 창작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남북분단을 지켜본 세대의 이야기를 허구로 구성한 문학작품임을 밝힙니다.

 

 

#1

내 앞에 있는 것은 한 무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소꿉친구의 무덤. 나는 그 무덤 앞에서 술병을 들었다. 나는 잔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소주병을 통째로 들이마셨다. 나이에 맞지 않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으니까. 올해로 아흔 세 살. 이제 얼마 안 가서 그녀의 옆자리가 나의 마지막이 되겠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셋이 모여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다는 나의 사치스런 소원도 함께 묻히리라. 나는 무덤에 등을 기대었다. 조금씩 몸이 달아오른다. 취기가 온 것이다. 헛것이라도 보이는 걸까. 한 꼬마가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뭐하세요? 할아버지.”

그냥 가라. 늙은이의 궁상이니까.”

가고 싶어도 이곳은 우리 증조할머니의 무덤인데....”

증조할머니? 혹시 너는.... 이미래의?”

이미래? 맞아. 분명 그 이름이었어요.”

이건 또 귀한 인연을 만났군.”

그보다 무덤에서 술을 마셔도 되요?”

무덤주인이 용서해 줄 테니 상관없어.”

우리 증조할머니랑 친했어요?”

친했다고 할까.... 같은 세대에서 같은 난세를 겪으며 자랐지.”

그러고 보니 나는 증조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없네. 얘기 좀 해줘요.”

이야기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스무 살 즈음 이후로는 제대로 만난 적이 없으니까.”

뭐에요, 그게. 그럼 할아버지 이야기라도 해 줘요. 같은 세대에서 자랐다고 말했잖아요.”

그럴까.”

평소 같았다면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에 취해있다. 술에 취한 것인지, 고향의 바닷내음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잠들어 있는 친구와의 추억에 취한 것인지. 역시 원인 같은 건 상관없으려나.

 

#2

남쪽 바다에 있는 한 이름 없는 섬. 코흘리개 시절의 나는 이곳을 무명섬이라고 불렀다. 10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마을을 꾸려 동거동락하며 살아가는 작은 어촌. 참고로 내가 태어난 년도는 1930. 역사책을 읽어본다면 알겠지만, 정확히 일제의 치하를 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지독한 순간에서도 이 섬만큼은 육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년시절 우리 가족은 네 명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나 그리고 나의 쌍둥이 형제. 우리 식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질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당시에 네 명의 식구들로 이루어진 가정이 흔치 않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와 나의 형제가 쌍둥이라는 점이 특이했던 것 같다. 나와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호기심 속에서 성장해왔다.

때때로 아버지의 배를 타고 함께 바다로 나갈 때면 뱃사람들의 질문 세례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귀찮기는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하였다. 누가 뭐래도 그는 나의 편이었으니까. 나와 같은 얼굴을 가졌고 나와 같은 체격을 가졌다. 그는 마치 나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특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옆집에서 보냈다. 옆집은 빈집으로 우리가 이따금씩 비밀 기지로 이용하고는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옆집에 누가 왔다.”

그가 말했다.

누가 왔는디?”

육지에서 왔다고 하더라. 글고 우리 또래가 있다고 하던디?”

우리 또래?”

그 시절의 우리는 이 섬에서 우리 또래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섬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서른을 훌쩍 넘긴 어른들뿐이었다. 이게 다 육지 사람들 탓이다. 일 좀 하게 생긴 젊은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끌고 갔다. 아버지는 늘 말하셨다. 이게 다 우리가 나라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사실 이 나라는 육지 사람들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다. 우리보다는 동쪽, 그리고 남쪽에 위치한 섬사람들이 육지 사람들을 침략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섬사람들은 힘이 참 센 것 같다. 육지 사람들은 우리 섬사람들보다 그 수가 곱절은 더 많다던데. 어떻게 그 적은 사람들로 육지를 침략한 것인지.

네 할 일 없제? 옆집에 놀러나 가보자.”

그기는 와 가는데?”

육지 사람들 구경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거 아이겠니? 우리가 또 언제 육지 사람들 구경을 해보겠나.”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옆집에 가까이 갔다. 옆집은 담벼락이 높게 쌓여있었다. 그는 그 담벼락에 가까이 갔다.

이 담벼락 너머가 육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여.”

그니까 우찌 여기를 들어가겠다는 긴데?”

내가 그를 다그쳤다. 그 순간,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우리 집에 무슨 볼 일이 있니?”

나는 그 사람을 돌아봤다.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 남자의 모습을 훑었다. 처음 보는 복장. 처음 듣는 말.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 챌 수 있었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었다.

, 긍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서양식 옷의 영향인 것인지, 아니면 남자가 사용하는 낯선 말투가 원인인 것인지. 그 순간, 그가 말했다.

여기 우리 또래가 있다고 들었슴다. 같이 놀면 안 되겠습니까?”

너희 또래라면.... 나의 딸을 말하는 거니?”

. 여자아이를 뜻하는 말. 나는 그를 제외하고는 나의 또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남자아이이다. ,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나의 또래 여자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남자가 자신의 딸을 불렀다.

미래야!”

정적이 흘렀다.

집에 없는 것인가?

일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가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정말로 여자아이였다.

머리를 길게 묶은 여자아이.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아이.

나는 처음 보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이 두 아이는 옆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니 같이 놀지 그러니?”

....”

그녀가 우리를 경계했다.

남자가 여자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미래이다. 이미래.”

나는 그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묶은 머리와 서양식 치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순간이 바로 나와 그, 그녀.

우리 세 명의 시작점이었다.

 

#3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느덧 옆집 식구들과 함께하는 삶이 적응되기 시작했다.

낮이면 그와 나, 이미래는 함께 뒷산에 올랐다.

그리고 뛰어 놀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우리는 함께 그 동산에 올라갔다.

나무 사이를 걷고, 꽃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대부분 굶었다.

그렇게 허기를 참으면서 해가 질 때까지 마냥 뛰어 놀았다.

아직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행복한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뒷산을 노닐던 우리는 그 정상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였다.

이게 뭔다냐.”

그가 그 무엇에 다가갔다.

그곳에는 한 집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통나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집이라도 한 채 있었던 거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집이라꼬?”

. 나무집. 예전에 아버지가 읽고 있던 책에서 본 적 있어.”

나무집이라 하믄....”

그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나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빈집 아녀? 우리가 다시 집을 쌓고 우리 집 하믄 되겠네!”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니 집 짓는 법은 아나? 나무 한 번 안 옮겨본 아가 우찌 집을 짓는다냐.”

그란건 간단하다. 그냥 쌓아올리면 되는 기잖나?”

그리 쉬우면 목수가 와 있겠나?”

영 아이다 싶으면 니는 빠지라. 미래야, 니는 같이 할 꺼제?”

그가 이미래를 바라보았다.

싫어.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싫고, 애초에 나는 힘이 그리 세지 않은걸.”

으으! 그라믄 됐다! 나 혼자 할기다! 나중에 한 번만 재워 달라 해도 소용없으니까 말이제!”

그날부터 그는 집을 짓는 데에만 매진했다.

아버지에게 빌린 연장을 갖고 나무를 다듬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쌓아올렸다.

물론 많아봐야 열 살이던 아이가 홀로 집을 하나 복구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산에서 나물을 캐시던 어른 분들이 나무를 드는 일을 도와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집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었다.

우와.... 정말로 해냈네.”

이미래가 만들어진 집을 앞에 두고 감탄했다.

당연하제! 내는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니께!”

그래, 그래.”

. 그래도 내는 이 집이 혼자서 만든 집은 아니라고 생각혀. 둘 다 알게 모르게 내를 많이 도와준 거 알고 있어. 그니까 이 집은.... 그 뭐드라....”

합작?”

이미래가 그의 말을 대신하였다.

그려! 그거. 이 집은 우리 셋의 합작이여.”

그 통나무 집.

우리는 그날부터 옆집을 대신하여 그 통나무집을 비밀기지로 삼았다.

우리 세 사람의 유대의 상징이었다.

#4

그 이후로도 우리 세 명은 몇 년 간을 함께 살아갔다.

그때의 나에게 이미래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마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가는 집은 이 섬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딸, 두 사람만이 한 집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집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지도 않는다.

다른 섬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밭으로 나간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도 아버지는 귀신 같이 일어나셔서 항구로 향하신다.

하지만 옆집의 아저씨는 달랐다.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웬일로 한 번 나오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육지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우편물을 수령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편물로는 편지와 신문 그리고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봉투가 전부였다.

대체 누가 매주 이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걸까?

어째서 신문을 매번 챙겨보는 것일까?

바다에 나가지도, 농지에 나가지도 않는 이 아저씨는 어떻게 배를 곯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그런 의문점들이 매일 같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우리를 집으로 부르셨다.

우리는 옆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아저씨가 우리를 반겼다.

늘 그렇듯이 셔츠를 비롯한 서구식 옷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 들어와.”

나와 그는 아저씨의 말에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의 방은 처음이었다.

그곳에는 수십 권의 책들이 놓여있었다.

편히 앉도록 해.”

나는 방에 있는 방석 위에 앉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라서 우리는 와 부르신 깁니까?”

그가 물었다.

갑작스럽지만.... 너희는 지금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니?”

이 나라.... 말입니까?”

그래.”

나와 요놈은 이 섬을 떠나본 적도 없고, 만나본 육지 사람들이라고는 아저씨와 이미래가 전부입니더. 나라라니, 그런 건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더.”

그가 단호히 대답했다.

하긴 그렇겠군. 괜한 걸 물었구나.”

아저씨는 책상에 놓여있는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그것이 감싸고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 곧 생일이지? 선물이다. 가지도록 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연장. 망치와 못 등 여러 도구들이었다.

몇 달 전, 아저씨가 그에게 책을 한 권 빌려준 적이 있었다. 그 책에는 한 돌무더기의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그는 그 돌무더기에 홀린 듯이 그 사진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런 그의 모습을 기억한 것이었다.

아저씨, 이 도구들은 어따 쓰는 깁니까?”

전에 네가 바라보던 돌들은 이 연장으로 만든 것이야.”

이 쇳덩이들로 말입니꺼?”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랐다. 그는 그 차가운 연장들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쪼록 조심해서 사용하도록 해라. 정 쓸 데가 없으면 앞집 돌쇠에게 조기 손질할 때나 사용하라 하고,”

아저씨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다음 날 새벽, 해가 뜬 이후였다. 햇빛이 창호지의 틈새를 간질이기도 전에, 그가 나를 깨웠다.

빨리 일어나 봐라.”

“...와 그라는데?”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잠깐 뒷산으로 가보자.”

그가 나를 재촉했다.

그렇게 우리는 뒷산으로 향했다.

여기서 뭘 어쩌자는 긴데?”

잘 봐라.”

그가 돌에 송곳을 갖다 댔다. 그리고 그 송곳을 망치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돌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 우짜라고?”

내가 이걸로 어무이의 모습을 본 뜰기다. 그라서 다음 생신 때 선물할란다.”

그래봤자 돌덩이여. 그거 받으셔서 기뻐하시겠나? 차라리 낚시를 해서 고등어라도 하나 잡는 것이 낫지.”

아이다. 나가 참말로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있다. 분명 좋아하실기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고작 송곳 갖고 어머니의 모습을 무슨 수로 돌에 새기겠다는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어째서 그런 일에 저리도 열중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알았다, 그라믄 완성되면 한 번 보여줘라.”

나는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늘 시간이 날 때면 뒷산에서 돌을 다듬었다. 새벽, 밥 먹은 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돌을 다듬는 것에 할애했다. 그렇게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어무이, 제가 생신 선물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더.”

선물이라고? 네가?”

.”

그는 자신 있게 뒷산에서 다듬던 그 돌을 보여주었다. 그 돌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완벽하게 새겨져 있었다. 완벽한 얼굴, 표정. 그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번째 조각이었다. 나 역시 그 완성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하나 배운 적도 없이, 단순히 손에 잡히는 대로 망치를 움직인 결과가 그랬다. 단언컨대, 그는 천재였다. 그 자리의 모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어머니를 불렀다.

안에 계십니까?”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아저씨를 마중 나갔다.

그리고 집에 들어왔다.

이미래와 함께.

아저씨, 무신 일이십니꺼?”

어머니의 생신 아니시냐? 함께 축하해주러 왔지.”

부모님은 이웃들을 잘 챙겨주는 만큼 이 섬사람들에게 평판이 아주 좋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주셨다. 허나 이 저녁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저씨가 유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저씨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아저씨. 두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일찍도 왔구먼.”

딸아이의 외출 준비가 끝나지 않아서 말일세, 하하.”

어서 앉게나.”

아버지와 아저씨는 오랜 친구처럼 대화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의아했다.

두 분.... 언제부터 그리 친했습니꺼?”

? 우리말이냐?”

.”

우리는 오랜 친구 사이야.”

질긴 악연이지.”

아버지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리고 두 남자는 웃었다.

새삼스레 깨닫는 것이지만, 아버지는 늘 서울말을 사용하셨다.

그러고 보니 자네. 이 석상 어떤가?”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그의 석상을 보여주었다.

정교하구만.... 육지에서도 보기 드문 솜씨야. 어디서 구했나? 값이 꽤나 나가보이는데.”

아들이 만든 걸세.”

뭐라고? 정말인가? 그렇다면 어느 쪽이?”

큰 놈일세,”

큰 놈. 그를 의미하는 것이다.

호오.... 굉장하구만. 이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니.... 육지에서 공부시켜보지 않겠나?”

육지?”

내 지인 중에 미술상이 한 명 있네. 안 그래도 내일 이 섬에 들리니 그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떤가?”

뭐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아버지는 마지못해 승낙하셨다.

#5

다음 날, 정말로 아저씨는 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이 조각일세.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아저씨가 남자에게 그의 조각을 소개하였다.

정말 정교하군. 고작 열 세 살의 소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야.”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명함을 건넸다.

나는 예술품들을 취급하는 장사꾼이다. 너희 아버지와는 오랜 친구사이이지. 너만 괜찮다면 조금 더 전문적으로 조각에 대해 공부하지 않겠니?”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좋습니더. 대신 이 애도 데리고 가게 해주이소.”

그가 나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만.... 네 뭔 소리 하나?”

이 애 없으면 안 갑니더.”

나로써도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진지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와 같이 만든 거니?”

.”

거짓말이었다. 이 석상은 순전히 그가 홀로 만든 작품이었다.

.... 어쩔 수 없군. 알았다, 그럼 두 사람이 육지에서 조각을 공부하는 걸로 결정한 거지? 보름 뒤에 사람을 보낼게.”

남자는 아저씨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어딘가로 향했다.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나는 곧바로 그를 다그쳤다.

네 돌았나? 나가 우찌 조각을 하나? 이 돌덩이만 해도 네 혼자서 다듬었잖니?”

아이다. 내가 볼 때 네는 분명 재능이 있어. 상상해봐라. 우리가 둘이서 함께 조각가로써 인정받는 미래를. 그라믄 육지가서 어무이랑 아부지랑 다 함께 호화롭게 사는기다. 기대되지 않나?”

끄응....”

나는 그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는 나와 같은 얼굴을 가졌고, 같은 체격을 가졌다. 그는 나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겠는가.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안 돼.”

아버지가 단호히 말씀하셨다.

와 그러십니까?”

그러고 보니 너희 둘한테는 내 옛날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옷고름을 풀어 상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몸에는 여러 흉터들이 있었다.

이 중에서도 내 등에는 한 개의 구멍이 나 있다. 그게 누구한테 맞은 건지 아냐?”

누구입니꺼?”

나의 친구였지. 함께 이 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싸워온 전우였다. 그런 그가 나의 등에 총알을 박았어.”

 

 

#6

15년 전, 상해.

어째서 동지들을.... 조국을 팔았지?”

자네는 이 나라가 해방될 것 같나? 아니, 해방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나? 늘 생각해왔지. 지금 이 고비를 넘기면 그 앞은 영광이 있으리라고. 자네는 그저 이 괴로운 현실을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열강이 이 나라에서 관심을 돌린다고 해도, 이념의 갈등이 사라진다고 해도 힘의 우열관계는 변치 않을 걸세. 백정의 자식은 백정이 되고, 양반의 자식은 양반이 되지. 근대화란 그저 가식이라는 의미일세.”

그것이 그대의 배신에 면죄부를 주나?”

백정의 자식이 양반이 되는 방법이 뭐가 있을 것 같나? 그저 양반의 옆에 붙는 것이다. 오직 그뿐만이....”

.

발포음이 들렸다.

탄환이 놈의 이마를 꿰뚫었다.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 있던 이는 이원섭.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우였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밀정을 처단한다.”

자네....”

나는 이원섭의 모습을 확인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가세.”

그렇게 우리는 무너져가는 거처를 뒤로하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의 허리에는 계속해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십리도 못 가서 쓰러졌다.

얼마 후 눈을 뜬 곳은 일본군의 기지였다.

우리는 재판에 서게 되었다.

재판장에 들어가기 직전, 이원섭은 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 잘 될 걸세.”

그의 기도가 도와주었던 것일까.

나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대신, 남쪽의 한 이름 없는 섬으로 떠나야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로.

그렇게 나는 육지를 떠났다.

#7

그리고 이 섬에서 너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렇게 너희 둘이 태어났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그 이원섭이라는 사람이 옆집의 아저씨입니꺼?”

그래. 이 옆집에 살고 있는 남자지. 이미래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우째 이 이야기를 지금 들려주시는 깁니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원섭의 아버지는 친일파였다. 그것도 사법부에서 꽤나 높은 자리를 갖고 있었지. 그렇기에 나는 석방될 수 있었다. 결국은 8년 뒤 원섭이도 이곳으로 유배되어 왔지만. 이렇듯이 지금의 육지는 일본인, 친일파, 독립군 등이 얽혀서 싸우고 있다. 나는 너희 둘이 이 난세에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아.”

하지만 아버지!”

안 돼.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들어라. 정 조각이 하고 싶다면 뒷산에서 홀로 해라. 결코 육지에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어.”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이원섭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걱정할 것은 없네.”

자네!”

이 미술상만큼은 신분이 확실한 녀석이야. 서울에 있는 공방에서 한 저명한 조각가가 제자들을 양성한다더군.”

자네는 상해에서 얻은 상처를 잊은 것인가? 그 밀정 하나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죽어나갔는지 잊은 것인가? 지금은 그로부터 15년이 흘렀어! 얼마나 분란의 모습을 갖고 있을지 감히 예측조차 안 되는군.”

그럼 계속 아들들을 섬에 가둬 둘 셈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웠었네. 설사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말이야. 그런 그대가 아이들을 섬에 가두어 자유를 빼앗을 셈이야?”

그건 상황이 달라!”

한 번 쯤은 아이들을 믿어보는 것이 어떤가? 우리가 젊었을 적에 꿈을 품었던 것 같이 말이야.”

.... 말로는 못 이기겠군.”

아버지는 잠시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좋을 대로 하게.”

아버지는 한 발 먼저 잠을 청했다.

잘 풀린 거겠지?”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8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그, 이미래는 통나무집에 모여 있었다.

서울로 간다고?”

이미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아저씨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처음 들어. 얼마나 있다가 오는데?”

모르겠다. 몇 년은 있다가 오지 않을까?”

그럼 나는 혼자겠구나....”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아 그렇지! 다음번에 돌아올 때는 우리 둘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줄게.”

너희 둘을?”

. 그럼 우리가 어디에 있든 외롭지 않을 거 아니야?”

약속이야?”

그래.”

우리 세 사람은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 날, 우리는 배를 타고 이 섬을 빠져나왔다.

 

#9

이 무명섬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는 마냥 그것이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깨졌다. 우리는 조금의 휴식시간도 없이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수련 과정은 지옥과도 같았다. 매일 망치를 두들겼고, 그 망치가 나의 손을 찧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피부가 녹을 것만 같은 불가마의 앞을 지키고 있는 일도 흔했다. 그렇게 1년의 공부시간이 지나, 우리는 열다섯 살이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망치질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와아아아!”

공방의 밖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뭐꼬?”

나와 그는 서둘러서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랬다. 그 날은 이 한반도가 일제에게서 완전히 독립을 한 날이었다. 물론 열다섯 살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녔는지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버지와 아저씨의 옛날이야기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메마른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환호하는 풍경이 좋았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안심하였다. 더 이상 이 나라는 갈등이 없겠다고. 섬을 떠날 때 아버지와 아저씨가 말씀하셨던 그 처절한 싸움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겠다고 안심하였다. 몇 년 뒤 일어날 거대한 비극을 예상하지도 못한 채로.

 

#10

광복의 날을 지나, 다시 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열세 살 때 시작했던 우리의 조각은 육 년이라는 시간을 바쳐 단련되었다. 어느 정도 어엿한 조각가가 되자, 스승은 우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우리는 여러 복잡한 마음을 지닌 채, ‘무명섬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우리의 주머니는 제법 두둑했다. 시장에서 우리의 조각품을 팔아서 얻은 자금이었다. 우리는 섬을 떠날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양식 옷을 하고 있었고, 서울말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푼 기대를 가슴에 안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고개를 넘어, 저 멀리에 위치한 우리 집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선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의 소매 자락을 붙잡았다.

빨리 가자.”

나는 그와 뜀박질을 하였다.

빨리.

더 빨리.

그렇게 우리는 집에 도착하였다.

집 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집 안에서.

다만 그곳은 나와 그가 살아온 집이 아니었다.

우리의 유년기를 맡겨두고 온 그 낡은 집이 아니었다.

삼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집.

크나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집.

그곳은 옆집이었다.

 

#12

괜찮나?”

그가 물이 담긴 잔을 내밀었다.

이미래.

이 섬을 떠날 시점에 눈에 새겨 넣었던 고운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삼베옷을 입은 채,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 모아서 앉아있었다.

붉게 충혈 되어있는 눈과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채로.

당신은....”

오 년만인가?”

이미래가 우리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해주었는데.... 추태를 보였군.”

그녀가 자리를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그녀를 말렸다.

앉아있어.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 터인데.”

.... 고마워.”

어찌 된 일인지 묻는다면 너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인가?”

아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말해줄게.”

이미래는 고개를 들었다.

나와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13

1947,

늘 그렇듯이 이원섭은 서재에 앉아있었다.

누군가가 보낸 편지를 손에 쥔 채로.

그때, 이미래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오늘은 어떤 공부를 해야 합니까?”

“...오늘은 가르쳐 줄 것이 특별히 없어. 대신 이야기를 좀 하자.”
이야기요?”

. 잠시 이 앞에 앉겠니?”

....”

이미래는 이원섭에 맞은 편, 방석 위에 앉았다.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낯빛이 많이 어두워 보입니다.”

언젠가 말해준 적이 있었지. 내가 젊었을 적의 이야기를 말이야.”

분명 독립을 위해서 움직이셨다고...?”

그래.”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시는 겁니까? 이미 이 나라는 광복을 하였지 않습니까?”

정부에서 나를 부르더군.”

정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나라의 국정을 논의하는 곳이다. 이십 년 전의 전우들이 나를 찾고 있어.”

그럼 떠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다.”

언제쯤 돌아오실 건데요?”

글쎄.... 그건 기약할 수 없겠구나.”

갔다 오세요.”

괜찮은 거니?”

아버지. 저는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될 때 즈음엔 이 이름 없는 섬으로 이주했고요. 심지어 둘 밖에 없는 친구들조차 떠났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이 섬을 떠난다면 저는 혼자가 될 것입니다.”

역시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곳에 남는 것이....”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엔 이런 저 이상으로 사회의 변혁을 바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만약 아버지께서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으시다면 저는 혼자가 되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는 열여섯 살이야.... 내 눈에는 아직 너무 어려 보인다.”

괜찮습니다. 옆집 어른 분들도 계시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빚을 지는 것만 같구나.”

이원섭은 붓을 들었다.

그리고 종이에 무엇인가를 써내렸다.

그것은?”

마음을 뜻하는 한자다. 사람 간의 관계는 소통에서 시작되며 소통이란 마음에서 시작되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야.”

그렇습니까?

미래야. 너의 글씨가 나의 글씨를 앞지르기 전에 돌아오마.”

그러려면 닷새도 채 안되어 돌아오셔야 될걸요.”

하하, 그런가!”

방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어느덧 밤이 그렇게 다음 날 새벽.

이원섭은 이미래의 곁을 떠났다.

#14

그게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어.”

이미래의 말이 끝났다.

기적적인 타이밍이었다. 누군가가 이 상갓집에 들어왔다. 숨을 가파르게 고르고 있는 남자였다.

여기.... 이미래가 누구지?”

남자가 그녀를 찾았다.

이미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가 이원섭 선생의 딸이구나.”

당신은 누구십니까?”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김동일이라고 하네. 이원섭 선생.... 그의 친구 되는 사람이지.”

친구라면.... 정부의?”

그래.”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우선은 앉아계시....”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전해줄 것이 있어서 온 것이네.”

전해줄 것이요?”

우선은 이걸 받지 않겠나?”

김동일이 이미래에게 한 종이를 전해주었다.

이것은?”

유품일세.”

이미래는 천천히 그 종이를 펼쳐보았다.

종이에는 한자가 하나 쓰여 있었다.

마음을 뜻하는 한자였다.
2년 전, 이원섭이 마지막으로 전해주고 간 글자였다.

만약 너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하였네.”

김동일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젠 너의 글씨가 나의 글씨를 앞섰을 것이라고.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게 돼서 미안하다고.”

남자의 말에 이미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었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방이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 슬픈 공기 속에서 김동일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15

1947, 정부.

이야, 오랜만이구만. 자네!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설마 자네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어때? 딸아이는 건강한가?”

아주 건강하지. 이런 모자란 아비를 모시고 사느라 고생이 많기야 하지만.”

그런가! 하긴 자네는 공부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일세! 하하하!”

그보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 그분이라면 회의 중이시네. 곧 끝날 시간이 되었지. 선생님께서도 자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화색이 되셨다고?”

그래?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군.”

괜찮네!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이 자네를 반기고 있어. 임시정부 시절부터 알고지낸 전우들은 특히 그렇지만 말이야.”

그래....”

그 녀석은 안 온 건가?”

아마 안 올게야.”

역시 그런가! , 녀석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잘 살리라 믿고 있지만 말이야. 녀석은 요즘 어떻게 지내나?”

그러고 보니 아들이 두 명 있어.”

녀석이? 금시초문인걸?”

쌍둥이 형제인데 손재주가 아주 좋아. 서울에 있는 조각가 친구에게 연락을 주었더니 수련생으로 받겠다더군. 아마 지금쯤이면 망치를 잡고 있지 않을까?”

망치라.... 어쩌면 지금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네.”

그 순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하나 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승만, 김규식.... 많은 거장들이 차례대로 회의실을 나왔다. 마지막으로 김구 선생님께서 회의실을 나오셨다. 둥근 안경을 쓴 선생님은 이원섭을 한 눈에 알아보셨다. 그리고 밝게 웃으셨다.

기다리고 있었네.”

 

#16

김구 선생님의 방.

그곳에서 선생님, 나 그리고 이원섭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은 좀 어떻게 지내나?”

저야 늘 똑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는.... 좀 어떤가?”

사실상 의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호화호식하며 살고 있을 겁니다.”

.... 그런가.”

잠시 정적이 흘렀다.

특별히 할 말이 없구먼.”

선생님이 웃으셨다.

그러자 이원섭도 약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어째서 자네를 불렀는지 알고 있는가?”

선거 때문이신 것 아닙니까?”

그래. 이 나라는 늘 같았어. 일제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였는가 하면, 지금은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시키려 하고 있네.”

그러니 강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강한 지도자라.... 좋지. 하지만 상황이 좋지 못 해.”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이대로라면 남과 북이 각각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네.”

역시 그런가요.”

알고 있었다는 말투이구만?”

여운형 선생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분명 남북관계에도 차질이 생겼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구먼.”

김구 선생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창문 너머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셨다.

자네는 이십여 년 간 평화를 누리며 살아왔어. 만약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면 가세. 원망하는 이는 없을 게야.”

확실히 지금 도망친다면 저는 여생을 분쟁에서 벗어난 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난세의 흐름 속에서 저 홀로 평화를 가진다면 그것이 어찌 진정한 평화이겠습니까?”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할 것이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부터 이원섭과 나는 김구 선생님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작업을 도왔고, 수많은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남북 간의 협상은 결렬되었다. 결국 남한은 독자적으로 선거를 진행하였다. 이 선거 이후, 김구 선생님께서는 정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셨다.

어느덧 시간은 1949626.

우리 세 사람은 서울 경교장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게.”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그러자 한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왼쪽 허리에 총 한 자루를 차고 있는 군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안두희.

육군포병소위이자 현재 선생님께서 이끌고 계신 한국독립당의 당원이었다.

자네, 내가 갖고 온 서류는....”

선생님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안두희는 왼쪽 허리춤에서 총을 뽑았다.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두 발, 세 발 그리고 네 발.

총 네 개의 탄환이 선생님을 꿰뚫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 벌어진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한 채,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 순간, 이원섭이 나를 불렀다.

김동일!”

그의 말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책상 뒤에 몸을 숨겼다.

안두희가 한 발을 더 발사했다. 그 탄환은 책상에 박혔다.

서둘러!”

그의 재촉에 나는 재빠르게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어 안두희를 겨냥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었다.

내가 녀석을 겨냥하기 직전, 안두희는 이미 방아쇠를 당겼었다.

그의 탄환은 이원섭의 머리를 가격했다.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원섭은 김구 선생님을 부축하기 위해 책상의 수비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원섭의 피가 튀었다.

나는 발포했다.

나의 탄환이 안두희의 오른손을 노렸다.

으아악!”

녀석은 울부짖으며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렸다.

이윽고 총성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안두희는 그들에게 맡겼다.

나는 이원섭과 김구 선생님께 다가갔다.

선생님!”

나는 먼저 선생님의 맥박을 확인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려 네 발이다.

나의 스승은, 백범 김구라고 불리운 위대한 지도자는 이제 없다.

나는 슬퍼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곧바로 이원섭에게 다가갔다.

괜찮은가?”

쿨럭!”

그가 피를 토했다.

말하지 말게. 곧 의사가 올게야.”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이미 늦었네.”

말도 안 돼. 자네까지 잃을 수는 없어. 나는 이미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어. 이제는 믿고 따르던 스승마저 떠나갔네. 만약 자네마저 없어진다면.... 나는....”

미안하구만.”

크윽.,..

하지만 이왕 미안할 짓을 한 거, 하나만 더 미안해할 수 있을까?”

뭐지...?”

이 책을 내 딸아이에게 건네주게.”

이원섭이 겉옷에서 책을 한 권 꺼내었다.

늘 지니고 다녔어.... 섬에 놓고 온 딸을 안 그리워해본 날이 없었네....”

이 책을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 역시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이원섭과 선생님의 시체를 붙잡고 절규했다.

죽음이란 결코 화려할 수 없다.

나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나의 전우와 스승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였다.

 

#17

그가 전해준 책 사이에는 편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그 편지가 바로 방금 너에게 전해준 마음 심의 한자이고.”

그렇다면 그 책은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이야.”

김동일은 이미래에게 책 한 권을 건네었다.

그 책의 제목은 살짝 특이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게 무슨 책이야?”

내가 물었다.

윤동주 시인.... 내가 존경하던 시인의 유고시집이야.”

녀석도 꽤나 어렵게 구했다. 딸이 좋아할 것이라며 늘 들고 다녔지.”

감사.... 합니다.”

그래.”

김동일은 그대로 집을 나갔다.

대신 그 옆집, 나와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마 우리의 아버지를 만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순간 고민했지만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관두었다.

대신 이미래를 위로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도대체 어떠한 말로 이 여자를 위로해야할지 몰랐다.

그 순간, 그가 말했다.

잠시 우리를 따라오지 않겠어?”

어디로?”

갈 데가 좀 있어.”

그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뒤따라갔다.

우리 세 사람은 뒷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함께 뜀박질을 하며 놀아 다니던 그 산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조각을 하였던 그 산이었다.

그의 모습을 동경한 내가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하였던 그 산이었다.

이 산에서만큼은 난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추한 현실이 보이지 않았다.

이 울창하고도 드높은 나무들은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 자연은 우리를 다시 어린아이로 바꿔주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산의 정상에 도착하였다.

앞을 봐.”

그가 말했다.

나와 이미래가 그 정면을 응시했다.

그 앞에 있는 것은 한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을 기억하고 있다.

굵은 통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집.

그의 첫 작품.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의 합작품.

이제부터 나와 이 녀석은 이곳에서 조각을 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설사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이제는 우리가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죽치고 앉아있을 테니까. 앞으로는 울 일이 없을 거야.”

.... ! !”

이미래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미소가 띄어졌다.

그날부터 우리는 이 통나무집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냈다.

조각에 필요한 재료를 잔뜩 쌓아놓고, 그것들을 다듬어갔다.

식사시간이면 이미래가 우리에게 식사를 갖다 주었다.

분명 통나무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울창한 숲 속, 격리된 그 공간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불길한 역사의 흐름은 자취를 감춘 채,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18

이제 곧 완성되는 거야?”

이미래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이제 곧이 아니야. 오늘 안에 완성될 테니까.”

정말이지? 약속할 수 있어?”

. 당연한 말을.”

그와 그녀.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본 채 대화를 한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두 사람.

이제는 혼기가 찬 두 사람.

나는 무심코 입가에 맴돌던 말을 뱉어내었다.

두 사람 혼례는 언제 올리는 거야?”

나의 말에 그 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무슨 말이야? 나는 처음 듣는....”

두 사람은 붉어진 얼굴을 숨긴 채 말을 멈추었다.

아무튼 오늘은 하산하지 않을게.”

이미래가 통나무집에 들어갔다.

좋아! 빨리 마무리 짓자!”

그가 나의 등을 떠밀었다.

이걸로 마지막 작업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조각상의 눈을 파내었다.

침착하게, 하지만 정교하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 내었다.

그리고 조각상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졌다.

그렇게 조각상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내었다.

한 편, 그가 잠들어있는 이미래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

약속은 지켰다. 완성이야.”

이미래가 눈을 비비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조각상이 보였다.

같은 체격, 같은 얼굴을 갖고 있는 한 형제의 조각상.

쌍둥이 형제의 조각상.

나와 그의 형상이었다.

와아!”

이미래가 감탄했다.

자화자찬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 조각상은 극도로 정교했다.

섬세하고, 강인했다.

표정묘사부터 인체비율까지 무엇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래는 어딘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왜 그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그가 말했다.

그게.... 이 조각상은 너희 둘의 모습이잖아. 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 않아.”

무슨 의미야?”

조각상의 손을 잘 봐봐.”

이미래가 그 손을 바라보았다.

형제의 손, 그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틈이 있었다.

마치 종이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틈이.

저건? 무슨 용도야?”

너의 글씨가 들어갈 거야.”

“...?”

아저씨와 약속한 거잖아? 언젠가는 앞지르기로.”

그럼 저 자리가?”

우리 두 사람의 조각과 너의 글씨가 새겨진 종이. 이걸로 다 같이 있는 거야. 언제까지고 함께 있자. 헤어지지 말고.”

....”

이미래는 또 다시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우리는 통나무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긴 새벽이 끝나고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태양이 떠오르겠지.

그러면 언제까지고 우리 세 사람은 그 태양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래야 했다.

긴 새벽을 지나서 떠오른 태양은 결코 지지 않을 만큼 강한 빛을 갖고 있을 터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앞으로 떠오를 태양은 진보를 위한 빛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결코 이념의 충돌을 끝낼 강력한 도구도, 평화를 위한 무기도 아니었다.

단순한 동족상잔의 상징이었다.

1950년의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19

나와 그는 집으로 직행했다. 집 안에서는 아버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번 만난 적 있는 남자였다. 이원섭 아저씨의 동료, 김동일. 그 사람은 우리를 발견하자 인사를 하였다.

이야, 오랜만이구만!”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가 물었다.

잠깐 들릴 일이 있었어. , 마침 잘됐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서울에 한 번 다녀오지 않을래?”

서울이요?”

그래. 이번에 조각관련으로 세미나가 열린다는 군. 서양 쪽 나라들도 꽤나 온 대. 좋은 기회일 터인데?”

세미나가 뭡니까?”

일종의 회의인 것이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한 가지 주제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

아아....”

어때? 좋은 기회이지 않아?”

만약 가게 된다면 언제 출발하면 됩니까?”

내일 동 틀 때쯤에 항구로 나와. 마침 나도 서울로 올라가야 하니까 다 같이 움직이자.”

 

#20

우리 세 명은 통나무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쩔래? 한번 갖다 올래?”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네가 간다면 나도 갈게.”

그럼 갈까. 그보다 미래한테도 말해야 할 텐대.”

그 순간, 이미래가 우리 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 중이야?”

그녀가 나와 그의 대화에 난입했다.

서울에 한 번 다녀오려고.”

서울? 거긴 왜?”

조각상 관련해서 회의가 열린다나봐.”

그가 설명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너도?”

. 나 이 섬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밖에 못 나갔어. 같이 가자!”

같이 가도 괜찮지 않아?”

내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놀러가는 게 아니라고....”

그가 말렸다.

걱정 마. 짐이 안 되게 잘 할 테니까.”

이미래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심지 굳은 모습에 져주는 척 허락해주었다.

다음 날 우리는 서울을 향해 움직였다. 김동일 아저씨가 지리에 훤해서인지 우리 세 사람은 손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이동한 뒤, 철도를 타고 서울까지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도착했다. 신의 장난이었을까. 우리가 도착한 날은 1950625. 전쟁이 발발한 날이었다.

 

#22

우리는 이틀 간 전쟁으로부터 몸을 피해있었다.

627일 밤 10.

김동일 아저씨가 휴대용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의 채널은 KBS 1라디오. 그러자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이승만 대통령의....”

김동일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십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우리 국군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였다는 말에 몸을 숨긴 우리들이었지만 그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래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우리가 이기고 있데요!”

하지만 김동일 아저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뭔가 이상해.”

?”

안 좋은 기분이 들어.”

아저씨는 잠시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쪼록 우리는 새벽에 한강대교를 통해 피난하도록 하자. 두 시간 정도 자둬. 바로 출발해야 되니까.”

그렇게 새벽. 우리는 한강대교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다리의 중간정도를 건넜을 때였다.

김동일 아저씨가 발을 멈추었다.

역시.... 안 되겠어.”

?”

너희는 먼저 건너가도록 해라. 사람들을 따라서 부산까지 피난해. 무명섬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곳은 일제 때도 피해가 적었어. 아마 휘말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아저씨는요?”

강남에 남아있는 동료들이 있어. 그들과 합류해서 사람들의 피난을 도우겠어. 무엇보다 아직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 그러니 너희는 먼저 가라.”

잠시만요!”

그 순간, 누군가가 김동일 아저씨를 멈춰 세웠다.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형제였다.

저도 같이 갈게요,”

? 말도 안 돼. 너는 먼저 피난을 가라.”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와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싸워왔지만 너는 다르잖아.”

아저씨가 그를 말렸다.

이미래 역시 아저씨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 여기서는 아저씨들을 믿어보자. 그리고 라디오에서도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그랬잖아. 사람들은 괜찮을 거야.”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김동일 아저씨는 잠시 망설였다.

아저씨를 따라가려는 그.

그를 말리는 이미래.

그런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일손이 부족하긴 한데.... 좋아! 대신 내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지금부터 나는 네 직속상관이다. 내 말은 명령이고 곧 법이야.”

알겠습니다!”

움직이자.”

김동일 아저씨가 그를 데리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래가 그를 막아섰다.

가지 마.”

미래야.”

가지 말라고!”

왜 그래? 하루 이틀만 늦게 가는 거잖아?”

만약 지금 너를 보낸다면 난 너를 다시는 못 만날 거 같아. 가지 마.”

미래야. 만약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고 싶어. 나 사실 너의 아버지를 많이 존경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망치로 돌을 깎는 것이 전부이지만 아저씨는 늘 세상을 위해 힘썼으니까.”

그래서 죽었잖아!”

이미래가 소리쳤다.

그래서 죽었어! 자만도 적당히 해! 너 따위 조각가 하나가 사람들을 뭘 도와! 우리 아빠도 만날 사람들, 사람들 하다가 죽었어. 그날 저녁 나에게 정부에 복직하겠다고 할 때 나는 말리지 않았어. 아니, 못했어. 만약 내가 아버지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수십, 수백 명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시신이 된 채로 돌아왔어. 내가 앞지를 때 즈음에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했으면서 송장이 된 채로 내 앞에 나타났다고! 지금만큼은 이기적으로 행동할거야. 나는 너를 못 보내, 아니, 안 보내.”

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인파에 휩싸였다.

이미래는 마지막까지 그의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결국 그 넘쳐나는 인파에 의해 그 손을 놓고 말았다.

안 돼!”
어두운 새벽, 달빛이 그 둘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렇게 나와 이미래는 반강제적으로 다리를 횡단하게 되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와 김동일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 둘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두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직감했다.

두 사람은 저 다리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이미래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 흐윽..., 결국 가버렸어.... 그 자식도 가버렸다고....”

너무 그러지 마. 다시 합류할 수 있을 거야. 김동일 아저씨도 함께 계셨잖아. 우선은 우리 둘이서 피난을 가자. 아저씨가 부산까지만 가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어.

그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

지금의 시간은 628일 오전 230.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존재하는 것은 단순한 폭발음 그리고 화재.

결코 돌아오지 않을 끔찍한 현실.

나와 그 사이에 있던 그 다리는 더 이상 없었다.

우리는 이제 닿을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나의 반신을 잃었다.

한강대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저 끊어진 그 다리의 잔해만이 남아있을 뿐이지.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절규하는 이미래의 입을 막고 필사적으로 피난을 갔다.

그때 나의 눈에는 어떠한 생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도망쳤다.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자신은 괜찮다고.

곧 그곳으로 건너가겠다고.

그러니까 이미래를 데리고 먼저 가라고.

금방 쫒아가겠다고.

언젠가 뒷산에서 하였던 술래잡기처럼 따라잡을 터이니.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다.

이 약한 대한민국은 강한 소련과 미국을 이길 수 없다.

한 사람의 개인은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다시 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생각이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는 조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과거.

남북분단의 이야기.

 

#23

그럼 그 뒤로 그 쌍둥이는 못 만난 건가요?”

그런 셈이지. 그날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38선에서 휴전 협정을 맺은 후,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지. 다른 나라로 가서 외화를 벌어오기도 하고, 수많은 공장들을 옮겨 다녔어. 전신에 굳은살이 생겼고, 그렇게 일하면서도 먹는 것은 시원찮았다.”

나는 녀석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20년이 지나 40살이 되어서야 나는 너의 할머니.... 이미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만나게 된 계기는 간단했어. 나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부모님의 장례식을 위해 나는 이 섬으로 돌아왔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렀다. 20년 동안 소식 한 번 전하지 않다니, 나만한 불효자식이 또 있을까.”

그 장례식에서 할머니를 만나신 거군요.”

그렇지. 주름진 얼굴을 한 채 다시 만났어. 대화는 그리 많이 오가지 않았다. 그나마 오고 간 말은 나의 고생사와 녀석의 고생사가 전부였어. 녀석은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였으며, 슬하에는 아이가 세 명 정도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대구의 조선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녀석은 겨우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한 신인 시인이었지. 여러모로 생활을 안정시키다보니 등단시기가 늦었다고 한다. 이 정도가 내가 알아낸 정보였어.”

쌍둥이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나요?”

부모의 장례식에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그 매정한 형제 말인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 미래가 알고 있을 리도 없었고. 이야기를 해봤자 괴로움만 깊어질 것 같았으니까. ,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감은 와. 북쪽에서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겠지.”

어떻게 하루살이처럼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내가 남쪽에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그는 나의 거울이니까.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한 결과야. 어차피 나는 그를 다시 볼 수 없어. 언제까지고 함께하자고 말했었던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야. 아마 발을 디디는 순간 차가운 탄환이 내 몸에 박히겠지.”

나는 꼬마를 돌아보았다.

여러모로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꼬마를 배려하지 않았다.

잠깐만 더 어울려줘라. 갈 곳이 있으니까.”

 

#11

방파제의 위에서 과거를 회상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였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나는 그와 헤어진 이후로 단 한 번도 조각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 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보여주는 나의 나약함은 이 인생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나는 항구를 뒤로 한 채 무명섬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중앙에 있는 산. 그 정상에는 한 통나무집이 세워져 있다. 나와 그의 작업실. 이것이 얼마만인가. 나는 이 나무집에 돌아왔다. 나무는 이미 썩어있었고, 주위에는 높이 쌓인 먼지들이 나를 반겼다.

역시 이런 꼴인가.”

이곳이 바로 그 통나무집인가요?”

그렇지.”

안 들어가세요?”

들어갈 필요가 뭐 있겠나. 괴로울 뿐이지.”

.... 그래도 들어가 보시는 게 어때요? 괴롭다는 이유로 현재의 상황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가. 꼬마 주제에 말은 잘 하는 구나.”

이래봬도 열 네 살이거든요.”

그 정도면 아직 어려. 나 역시 네 나이 때 불가마를 지피며 생각했지.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 그 나이를 회상하면 한 없이 오래 전의 이야기야.”

그런 이야기는 됐어요. 물어보지도 않았구만. 그보다 뭐 하나만 정말로 물어봐도 되요?”

뭔데?”

그 당시의 분단은 우리가 원했던 것이에요?”

아니지. 한반도의 허리를 끊은 것은 그 주인이었던 한민족이 아니라 손님이던 몇 개의 열강들이었어. 물론 한민족 중에서도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가담하기는 하였지만.”

그런데 이제는 그 열강들이 없잖아요? 그럼 화해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야. 국제 법들도 여러 개 얽혀있고....”

겁쟁이.”

?”

말했잖아요. 두려움 때문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움직여요. 그리고 지금의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은 이 집에 들어가는 것이고요.”

그게 무슨?”

꼬마가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집 안으로 들어왔다.

화해를 하는데 필요한 것은 소통과 대화입니다. 그리고 소통과 대화를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와 대화거리가 필요하죠.”

꼬마가 통나무집의 문을 닫았다.

잘 찾아봐요. 그것이 대화거리이든 용기이든 이 집 안에 있을 것만 같으니까.”

꼬마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통나무집으로부터 멀어졌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발자국 소리가 그랬다.

나는 이 집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미 무너져 내린 천장은 작업실을 햇빛으로 비추어주었다. 전등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우뚝 솟아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낡은 천으로 덮인 무엇인가가 우뚝 솟아올라 있었다. 나는 그것에 가까이 갔다. 그리고 그 천막을 잡아 당겼다. 그 위에 쌓인 먼지가 나를 덮쳤다.

콜록, 콜록.”

나는 기침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조차도 없었다. 나는 걷어진 천막 안에 있는 그 돌덩이들을 바라보았다. 한 형제의 조각상. 같은 얼굴, 같은 체격을 가진 쌍둥이의 조각상. 나는 품속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었다. 미래가 죽기 직전 꼬마에게 맡긴 것이다. 그리고 꼬마는 그것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요컨대 그녀의 유서이다. 나는 그것을 아직까지 열어보지 않았다. 그녀를 이 고향에 묻어준 후, 이 통나무집에서 그것을 읽어 보려고 하였다. 나는 그 하얀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새하얀 종이를 펼쳤다.

장문의 편지를 기대하였지만,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은 하나의 한자였다.

붓으로 쓴 한자였다.

마음 심.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선비이자 독립 운동가이자 아버지였던 사람이 쓴 한자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많이 달랐다. 미래의 글씨는 더 강했다. 더 억세었다. 그리고 더 애잔했다.

노망이라도 난 것일까.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나의 늙은 손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망치를 잡았다. 그리고 그 망치를 조각상에 가까이 하였다. 그 낡은 망치는 두 조각상의 눈을 깨부쉈다. 한 형제의 눈을 부쉈다. 그렇게 두 조각상은 눈을 잃었다. 조각가인 나에 의해서 조각상은 눈을 잃었다. 이제는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조각상. 맹인 조각상이다. 나는 조용히 그 조각에 등을 기대었다. 냉기가 아닌 온기가 느껴졌다. 아직 이 돌은 식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이미래의 유작을 그 맹인 조각상의 손, 그 사이에 있는 틈에 끼워 넣었다. 그 쌍둥이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언젠가 평화의 시간이 다가온다면 그때야말로 나는 이 눈을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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